아시안 게임은 4년마다 아시아의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종합 스포츠 대회입니다.
현재 아시안 게임은 아시아 올림픽 평의회가 주관하고 개최하고 있습니다. 종목마다 메달이 수여되고 있으며, 1950년에 시작된 전통을 따라 1등은 금메달, 2등은 은메달, 3등은 동메달이 선수에게 수여됩니다. 여러 대륙별 대회 중 유일하게 짝수 연도에 개최하는 대회입니다. 선수들은 각자 본국의 올림픽 위원회에 의해 선발됩니다. 우리나라 국적 선수들은 대한체육회를 거쳐 선발되어야만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게 됩니다. 흔히 선수의 국가와 국기가 메달 시상식에 쓰입니다. 또한, 각 나라의 메달 현황을 보여주는 표에도 쓰입니다. 원칙적으로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국가만 참여하지만, 몇몇 비독립 국가도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필리핀, 스리랑카, 싱가포르, 태국의 7개국은 대회 역사상 한 번도 빠짐없이 참가하였습니다. 한편, 1973년 병역특례제가 시행될 당시 동메달 이상이어야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부터는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야만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수많은 아시아의 나라들이 유럽, 미국 등 강대국으로부터 독립하였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새로운 독립국들은 전쟁과 무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상호 이해로 발전이 가능한 새로운 종류의 경쟁을 원하기 시작했습니다. 1948년 8월, 영국 런던에서 제14회 하계 올림픽 경기가 열렸습니다. 그 당시 인도 IOC 위원인 두트 손디는 아시아의 여러 스포츠 선구자들에게 올림픽과 같이 전 세계가 참여하는 경기가 아닌 아시아 국가들이 참여하는 아시안 게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보자고 하였습니다. 이에 참가국 중 대한민국·필리핀·미얀마·인도·중화인민공화국·스리랑카 총 6개 국가가 대회를 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1949년 몇 개국이 더 참가하여 아시아 선수권 연맹을 만들었고, 아시아 경기 대회를 열 것을 합의했습니다. 그 결과로 1950년에 인도 뉴델리에서 제1회 대회를 열기로 약속하였으나,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의 미흡함과 복잡한 국내외 사정으로 제1회 대회는 1년 연기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1회 대회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11개국이 참가하였습니다.
아시아 여러 나라가 아시안게임에 참여하면서 매회 참가하는 나라 수가 늘어났고, 대회 규모도 점차 커져갔습니다. 하지만 회원국 간의 정치적 대립이 있었기 때문에 대회는 많은 문제를 겪기도 했습니다. 1962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4차 대회에서는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출전을 반대하여 이스라엘과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갈등 문제로 중화민국이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중화인민공화국 역시 참가하지 못하였습니다.
1966년 태국 방콕에서 제5회 대회가 열렸습니다. 이곳에 이스라엘과 중화민국이 참가하자 아랍 국가들이 대회를 보이콧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을 해당 대회에 나오지 못하게 하여 결국 이스라엘은 아시아 경기 연맹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유럽 올림픽 위원회로 옮겨 아시안 게임 참가 자격을 완전히 상실하였습니다. 이렇게 아시안게임에서 퇴출당한 이스라엘은 2015년부터 유러피언 게임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즉 중국과 나라 명칭 문제로 갈등 관계였던 중화민국(대만)은 이후 중화 타이베이라는 이름으로 재가입하여 제11회 대회부터 참가하였습니다.
개최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도 있었습니다. 1970년에 열린 제6회 대회는 원래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릴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위협이 있어서 결국 개최하지 못하였습니다. 1978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8회 대회는 인도·방글라데시와의 대립이 개최지 변경의 중요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 두 대회는 결국 아랍 산유국을 중심으로 한 재정 지원으로 태국 방콕으로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혼란과 대립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이후 아시안 게임은 더욱 크게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아시안 대회의 발전을 위해 아시아 올림픽 평의회라는 상설 기구를 만들기로 하였고, 1982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9회 대회 이후 상설기구가 되었습니다. 1986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제10회 대회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등 여러 공산주의 국가가 참가하지 않아 정치적 논란이 되었으나, 중화인민공화국만은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무수한 논란과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아시안 게임은 점점 더 성장하였습니다.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부산에서 열린 제14회 대회와 인천에서 열린 제17회 대회에는 참여하였습니다.
1991년에는 공산주의 진영인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면서, 지리적으로 아시아에 속하는 독립국이 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이 아시아 올림픽 평의회에 가입하였습니다. 신규 독립국 5개국은 1994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제12회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하였습니다. 일부 국가들은 그들의 문화적·민족적 문제 등으로 참가를 반대하기도 하였으나, 이들의 참가는 아시안게임 참가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이라는 좋은 결과를 이끌었습니다. 2006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15회 대회에서는 45개국의 39개 종목 15,0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하는 대규모 대회로 성장하였습니다. 또한, 이 당시 오세아니아의 오스트레일리아가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으나 상설기구인 아시아 올림픽 평의회의 의장 셰이크 아메드 알 파드는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그가 오스트레일리아의 참여를 거절한 이유는 오세아니아 국가들의 국가 올림픽 위원회에게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헀습니다.
'스포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날의 올림픽과 올림픽 조직 위원회(IOC) (1) | 2025.02.17 |
---|---|
올림픽 (0) | 2025.02.16 |
올림픽 그리고 고대 올림피아 경기 (0) | 2025.02.16 |
종합 스포츠 경기 대회 (0) | 2025.02.16 |
2025년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 (2) | 2025.02.14 |